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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미술의 상징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by 이든혜윰 2023. 11. 17.

나일강을 중심으로 비옥한 땅을 의미하는 케메트(Kemet)와 황무지인 사막 데세레트(Deseret)의 상반된 자연환경이 함께 어우러져 발생한 이집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보다 기름진 땅을 가지고 부를 축적하여 인류 최대의 문명으로 발전했다.
채집과 수렵 활동에서 농경 사회로 전환한 인류의 문화는 씨족 중심의 부락에서 왕조가 성립되는 도시국가로, 주술적인 원시 신앙에서 신화 중심의 종교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강력한 왕권의 절대적인 영형하에 위대한 문명이 탄생했다.
기원전 3200년경 통일된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이집트는 왕권 중심의 사회였고 왕이 곧 신과 같은 존재로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당하고 기원전 30년 로마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무려 3000년간 번영을 구가했다.
이집트 왕조는 대략 기원전 3000~2800년경의 초기 왕조 시대, 기원전 2800~2200년경의 고왕국 시대, 기원전 2200~1700년경의 중왕국 시대 그리고 이집트 최고의 문명을 이룩한 기원전 1600~1000년경의 신왕국 시대, 마지막으로 기원전 1000~330년경의 말기 왕조 시대로 구분한다.
이 시기 중 특히 고왕국 시대인 제3~5왕조의 미술 작품들은 이집트 3000년의 역사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하다. 기자(Giza) 지역의 정밀하고 단순한 피라미드를 비롯해 정면 부동성의 법칙을 지키고 있는 '멘카우라 왕과 왕비', '카프라 왕의 좌상', '촌장상', '서기상 모두 고왕국 시대의 작품이다. 고왕국 시대의 전형적인 미술 양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이집트 미술의 기본적인 형식과 유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다만 신왕국 시대의 제18왕조 이크 나톤(Ikhnaton) 왕 시대는 기존 왕조의 아몬 신을 멀리하고 태양신(아톤)을 숭배하며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단지 1대에 그치고 다시 이전의 아몬 신으로 되돌아갔다.
이집트 건축과 조각을 대표하는 왕의 분묘 피라미드와 거대한 신상 스핑크스는 이집트인들의 영원불멸에 대한 기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라미드는 사후의 영적인 세계를 위한 분묘였다. 그 안에 매장된 조각상과 미라 역시 사후의 영원한 세계를 위한 염원으로 만든 것으로 신앙에 가까운 행위로 볼 수 있다.
제세르(Djeser)왕 이후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왕조의 절대권력과 위엄을 상징한다. 현재 이집트에 분포된 80여개의 피라미드 중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쿠푸(Khufu)왕, 카프라(Khafra)왕, 멘카우라(Menkaura)왕의 분묘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를 최고로 꼽는다. 세 개의 피라미드는 시기적으로 쿠푸 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오래되었고 이어서 카프라, 멘카우라 순으로 이어진다.
당시는 천문학적 지식도 미흡했고 건축, 토목 기술과 장비 또한 부족했음에도, 쌓아 올린 돌과 돌 사이의 틈이 종이 한 장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네 개의 각 면이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정확성을 갖추고 있다.
나일강 지역은 거대한 조각상이나 분묘를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는 물량과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돌들은 나일강 기슭과 사막에 풍부하게 널려 있는 석회석으로, 돌 한 개의 무게가 평균 2~3톤에 이르며 이 거대한 돌들의 이동에는 나일강의 범람을 최대한 이용했다. 특히 가장 크고 오래된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완성 때의 높이가 146m이고 밑변의 길이는 233m로 약 230만 개의 돌이 사용되었고, 매년 40만 명의 노동자가 20년 동안 일해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어마어마한 노동 집약의 결실인 피라미드는 절대 왕권이 아니면 도저히 이룩해 낼 수 없는 결과물이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고 난 후에도 현세와 똑같은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곧 신앙이 되었으며 파라오는 곧 신의 대변인으로서 영원불멸을 갈구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영혼이 머무를 무덤이라고 생각했으며 미라로 만든 파라오의 시체는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미로를 통해 매장 실에 안치했고 통로를 봉쇄했다. 미라를 잘 보존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심장만 남기고 모든 내장을 제거했고 특별한 약품을 처리하여 황금관으로 감싸 보존했다. 무덤 안에는 시종의 모습을 한 조각상과 왕족의 음식, 의복, 보석, 무기 등을 함께 매장했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조형물은 기자의 피라미드 옆에 앉아 있는 동물 모양의 거대한 조각상인데 높이가 약 20m, 길이가 70m에 달하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스핑크스이다.
스핑크스는 엄청난 힘을 가진 동물과 지배자인 왕과 자비로운 신을 결합한 형태이다. 하나의 거대한 암석으로 된 산을 깎아서 조각했으며 묘지를 지켜주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자에 있는 스핑크스는 인간의 얼굴(카프라 왕의 얼굴)을 하고 있고, 그 얼굴은 사자의 갈기로 둘러싸여 있으며 몸통 역시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을 합성한 모습의 스핑크스는 아시리아의 라마수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스핑크스의 성격은 그리스와 이집트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에서는 인간 중심적인 신의 형상이면서 힘을 상징하는 분묘의 수호자로 여겼던 것에 반해 이집트에서는 동물들이 정신적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면서 이집트의 왕들을 상징했다.
이처럼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1989년 유네스코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1380년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코와 볼의 파손 흔적은 현재에도 남아 있으나 그 위용만은 당당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