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문장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물로 관람자의 내면에 얼마나 깊은 파장을 일으키고 싶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이다. 특히 1958년, 뉴욕 씨그램 빌딩을 위한 대규모 벽화 작업을 의뢰받았을 때, 로스코는 완성된 작품이 레스토랑의 단순한 장식품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 끝내 계약을 파기했다. 장식을 위해 예술을 소비하는 것에 반발한 이 사건은 로스코가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에 직접 호소하고자 했음을 잘 드러낸다. 그의 회화 세계는 여타의 추상화와 달리 형상의 재현이나 상징 기호 없이도 강렬한 감정적·영적 체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다. 아시아 최초로 예술의 전당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접했을 때는 의문과 의심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접하게 되니 의문은 사라지고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가끔 감동적인 무언가를 접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말 그대로 언어로는 도무지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때가 있다. 그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작품으로 밖에 그의 작품을 설명할 수가 없는 진정한 예술로서 기능하는 작품 말이다.
1) 로스코 작품의 배경과 발전 단계
(1) 초기 구상 작업과 환경적 영향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현 라트비아) 출신 유대계 이민자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뉴욕이라는 다채로운 환경에서 자라나며, 초기에는 인물화나 풍경화 등 구상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이 시기 작품에는 어둡고 극적인 명암 대비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훗날 추상 표현주의 시기에도 깊은 정서적 밑바탕이 된다.
1930~1940년대에 걸쳐 서서히 형상 표현에서 벗어나 회화의 본질적인 요소(색, 공간, 감정)에 집중하게 된 로스코는 결국 재현적 요소 대신 관람자의 내면을 건드리는 색채 사용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2) 추상 표현주의와 컬러 필드(Color Field)로의 전환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발전한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는 잭슨 폴록, 바넷 뉴먼, 윌렘 드 쿠닝, 클리포드 스틸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미술 사조였다. 로스코는 이 흐름 속에서 액션 페인팅으로 대변되는 역동적인 붓놀림보다는, 커다란 색면으로 이루어진 캔버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개된 경향이 바로 컬러 필드(Color Field) 회화이다.
로스코의 컬러 필드는 단순히 색의 병치를 넘어,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 속 색채와 직접 교감하게 하는 공간감을 조성했다. 캔버스에 겹겹이 칠해진 반투명 레이어, 흐릿한 경계선, 서로 다른 색들 사이의 미묘한 진동감이 시각적 몰입을 일으키는 특징으로 부각되었다.
(3) 후기: 캔버스의 확장과 어두운 팔레트
1950년대 로스코의 대표작들은 주로 오렌지, 빨강, 노랑 같은 밝은 색조를 사용한 거대한 캔버스로, 즉각적인 시각적 충격을 유도했다. 하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검정, 갈색, 짙은 회색 등 어두운 팔레트가 화면을 압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우울증을 앓았던 로스코는 1970년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와 같은 내면의 고뇌가 후기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분석이 많다. 후기 작품들이 비록 어둡고 침잠된 톤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심오하고 강력한 영적·정신적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단순한 색 변화 이상의 의의가 있다.
2) 로스코가 담고자 했던 주제: 영성, 감정, 인간의 본질
(1) 영적 체험(Spirituality)으로서의 회화
로스코 예술의 근간은 영성(Spirituality)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종교화처럼 특정 종파의 교리를 펼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숭고미와 경건함을 일깨우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이다.
로스코 채플 내부에는 일련의 대형 캔버스가 설치되어 있다. 각 벽면을 가득 채운 추상 회화가 하나의 명상 공간을 만들어내며, 관람자는 그곳에서 색채가 만들어내는 무언의 에너지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적 연출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이가 내면과 대화하게 만들겠다”는 로스코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2) 색면을 통한 감정 전달
로스코는 특정 상징이나 알레고리를 배제한 채 색면만을 이용해 관람자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강렬한 빨강 또는 차분한 갈색 등 색의 선택은 물론, 경계를 흐릿하게 번지듯 표현하는 기법이 핵심적 요소다. 붓자국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 물감이 층층이 쌓이고 스며드는 과정을 통해, 마치 안개 속에 떠오르는 색채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기법은 시각적 진동을 일으켜 감각적 몰입을 더하고, 관람자가 화면을 오랫동안 응시함으로써 본인도 모르게 작품에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도록 유도한다. 이는 “오로지 색으로만 소통하겠다”는 로스코의 철학을 강렬하게 반영하는 특징이다.
(3) 경건함과 몰입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때, 관람자가 그림에 매우 가까이 다가서서 응시하길 권장했다. 의도적으로 낮은 위치에 작품을 배치해 캔버스가 시야를 가득 채우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런 배치는 색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 되어 관람자를 완전히 둘러싸는 느낌을 유도한다.
작품의 제목 역시 대부분 ‘No. 61’, ‘White Center’처럼 극도로 간결하거나, 때로는 제목 없이 공개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사전 정보로 인해 관람자의 해석이 제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순수한 색채 체험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3) 로스코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
(1) 컬러 필드 회화의 정립
바넷 뉴먼, 클리포드 스틸과 함께 로스코는 컬러 필드(Color Field) 회화를 정립하고 대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는 20세기 중반 추상 표현주의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을 때, 액션 페인팅과 대조되는 또 다른 양상으로 주목받았다.
컬러 필드의 핵심은 “대형 캔버스 위에 색의 면적이 차지하는 물리적·심리적 체험”이다. 이는 미술사적으로 모노크롬 회화나 미니멀 아트 등 다양한 후기 추상 경향에 영향을 미치며, 현대의 설치미술, 몰입형 전시와도 맥이 닿는다.
(2) 상징 체계의 탈피와 색채 중심 소통
현대 개념미술은 종종 텍스트나 상징, 알레고리 등을 통해 개념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이에 비해 로스코는 온전히 색만으로 감정과 관념을 전하겠다는, 어찌 보면 고난도에 가까운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물은 관람자의 감수성에 크게 의존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작품과 보는 이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든다. 이는 “해석을 과감히 배제하고 체험을 우선시한다”는 태도로, 미술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실험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3) 미술 시장과 작가의 태도
씨그램 빌딩 프로젝트를 포기한 일화에서 보이듯, 로스코는 상업적 목적과 타협하기보다는 작품 본연의 ‘순수 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데에 매진했다. 이처럼 예술을 장식품이나 투자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고, 예술은 인간과 영혼을 이어주는 매개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태도는 이후 현대미술 작가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작품이 시장에서 고액에 거래되는 것만이 예술의 가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 예술가 스스로가 자기 작업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큰 울림을 남겼다.
로스코의 영성에 대한 개인적 견해
마크 로스코는 평생 동안 인간 내면의 영성에 다가가는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분투했다. 심볼과 알레고리로 개념을 표현하는 손쉬운 방법 대신, 오직 색채의 유기적 작용만으로 관람자의 감정을 자극하려 했다. 이처럼 어려운 길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코의 시도는 전무후무한 성공을 맺었다고 본다.
현대의 개념미술은 상징과 텍스트를 활용해 개념적 해석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로스코는 순수한 색의 조합과 캔버스 구성만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감정과 직결되는 지점을 열어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정서와 직결되는 예술적 울림을 창출한다'는 그의 믿음이었고, 실제로 많은 관람자가 작품 앞에서 침묵 속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 효과를 증명했다.
미술사에서 로스코만큼 영적인 지점에 근접했다고 평가되는 작가는 드물다. 특히 로스코 채플은 한 예술가가 창조한 ‘색면 공간’이 종교나 사상에 구애받지 않는 묵상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이다.
그가 삶을 마감했던 방법도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영성에 확실하게 확인하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인생을 마감했던 방법은 우울했지만 로스코 본인은 그 순간 어땠을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을 가장 본질적인 수준에서 움직이고자 했던 마크 로스코. 그의 치열함은 앞으로도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는 '색 하나만으로도 영혼을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강렬한 체험을 선사한다.
'미술작품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블로 피카소, 회화의 해체와 재창조 (0) | 2025.02.20 |
---|---|
빈센트 반 고흐, 광기와 천재성의 경계에서 (0) | 2025.02.20 |
마르셀 뒤샹, 개념미술의 샘을 발견하다 (0) | 2025.02.18 |
데미안 허스트, 죽음에 관하여 (0) | 2025.02.14 |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사라지는 것들 속에 남겨진 의미 (0) | 2025.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