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파리의 어느 화실.
한 젊은 화가가 캔버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붓을 들었고 한 여인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우리가 아는 초상화와는 사뭇 달랐다.
코는 한쪽으로 휘어 있었고 눈은 비대칭으로 배치되었으며 입은 마치 두 개처럼 보였다.
그는 그림을 완성한 후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이 화가의 이름은 파블로 피카소.
이 순간부터 미술의 역사는 바뀌기 시작한다.
천재 소년과 스승
1881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는 미술학교 교수였다.
피카소에게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는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다.
피카소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일곱 살 때 그린 그림을 본 사람들은
'이건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놀랐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인정했고,
그를 정식으로 미술 학교에 입학시켰다.
열 살이 되자, 피카소는 이미 자신의 아버지를 뛰어넘는 실력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는 스스로 붓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가르칠 것이 없다."
이렇게 본다면 아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계발한 아버지로 훌륭한 아버지로만 보일수 있지만
호세 루이스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피카소에게 행했던 행위들 중
그 당시라 하여도 충격적인 일화들이 많다.
13살 밖에 되지 않은 피카소를 남자로 만들어 준다며 성매매 업소에 데려가 매춘을 하게 한다던가,
비둘기를 그리기 위해 비둘기 사체를 해체하는 행위를 강요하기도 했다.
교사로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아버지로서 호세 루이스는 훌륭하지 못했다.
피카소의 훗날 여성편력은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볼수있다.
피카소는 더 깊이 있는 교육을 받기 위해
스페인 최고의 미술학교인 '바르셀로나 미술 아카데미(La Llotja)'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그는 엄격한 아카데믹 기법을 익혔지만,
전통적인 기법에 얽매이는 것이 답답했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었다.
결국, 그는 파리로 떠났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피카소의 예술적 변천사
피카소의 작품 세계는 뚜렷한 시기별 변화를 보인다.
그는 한 가지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았고,
끊임없이 변신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청색 시대(1901~1904) – 슬픔의 색채
젊은 시절, 피카소는 우울함과 빈곤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은 푸른색이 지배적이었다.
그는
거지, 병든 사람, 고독한 인물들을 그렸다.
대표작:
- 〈늙은 기타리스트(The Old Guitarist)〉
- 〈자화상(Self-Portrait)〉
장미 시대(1904~1906) – 따뜻한 변화
이후 그는 우울함을 벗어나
따뜻한 장미색과 오렌지색 계열의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림 속 인물들도 서커스단의 사람들, 무희, 연인 등으로 변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더욱 부드럽고 감성적이었다.
대표작:
- 〈아를르캥(Harlequin)〉
- 〈파이프를 든 소년(Boy with a Pipe)〉
입체파 시대(1907~1917) – 혁명적인 변신
그는 더 이상 현실을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한 화면에 표현하는 방식을 창조했다.
**입체파(Cubism)**의 탄생이었다.
그는 기존의 원근법을 깨뜨리고,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분해해 재구성했다.
대표작:
-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전쟁과 평화 – 〈게르니카〉의 탄생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이
스페인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했다.
그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전쟁의 참상을 담은 대작 **〈게르니카(Guernica)〉**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강렬한 흑백 톤으로 표현되었고,
절규하는 사람들, 폭격 속의 동물, 부서진 건물들이 그려졌다.
그는 말했다.
"이것은 시대의 증언이다."
피카소 vs. 마티스 – 서로 다른 혁신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고,
끊임없이 경쟁하며 예술을 발전시켰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스타일 | 입체파, 구조적인 표현 | 색채 중심의 표현주의 |
주요 특징 | 형태를 해체하고 재구성 | 강렬한 색채와 감성적 분위기 |
대표작 |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 | 〈춤(The Dance)〉, 〈붉은 방(The Red Studio)〉 |
피카소가 형태를 해체하며 구조적인 실험을 했다면,
마티스는 색채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피카소가 미술사에 남긴 것들
피카소는 미술의 한계를 끝없이 확장했다.
그가 없었다면 입체파도 없었고 현대 미술의 많은 흐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미술의 혁신을 이끈 선구자였다.
끊임없이 변신하며 새로운 예술의 길을 개척했다.
그가 남긴 말이 있다.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할 뿐이다."
그의 예술은 발견의 연속이었고,
그 발견이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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