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31~404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아테네는 쇠퇴하게 되었고, 스파르타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정치적인 내부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전체에는 몰락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고 정치적, 사회적 불안으로 페리클레스 시대 폴리스의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이상과 정신은 급격히 쇠락했다.
또한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폴리스적 시민 의식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도시 곳곳에 만연된 소피스트들의 현학적 사고와 언변술의 영향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과 같은 철학자들은 도덕적 진리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을 펼치기도 했다.
평등과 자유 그리고 민주적 형태의 사회 구조가 붕괴한 그리스에는 개인적 성향의 휴머니즘이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었는데 미술에서도 역시 인간의 감정 이입을 우선으로 하는 감각적인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프락시텔레스Praxiteles(기원전370~330년 활약)의 대표작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작품을 통해 시대 적 변화에 민감한 조형 욕구를 읽을 수 있다.
그리스 미술에서 아르카이크기와 헬레니즘기 사이에 있는 고전기를 흔히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라고 부른다. 고전기는 일반적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미론, 폴리클레이토스, 피디아스가 활동했던 시기를 고전 전기라 하고 프락시텔레스, 리시포스Lysippos, 스코파스Skopas 등의 3대조 각가가 활동했던 시기를 고전 후기 (기원전 400~330년) 라고 구분한다. 고전 후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출현으로 그리스의 전 영토가 로마의 지배에 놓이기 전까지의 70 여 년에 걸친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의 조각은 고전 전기에 나타났던 신상과 신전의 숭고주의 양식과는 다른 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개인적 감정을 표출 하면서 인간의 감수성을 나타내는 우미의 양식을 느낄 수 있다.
고전 후기 프락시텔레스와 함께 활동한 조각가 스코파스는 비장함과 격정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도취의 마이너스>, <헤라클레스 란즈돈> 등의 작품을 남겼다.
리시포스는 다수의 청동 조각을 했는데 인체의 비례를 8등신까지 끌어 올리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인체의 이상을 제시했다. 잘 알려진 <아폭시 오메노스>, <파르네제의 헤라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흉상> 등의 작품을 남겼다.
프락시텔레스는 대표작인 동시에 문제작인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를 발표했는데 피디아스 양식이라 일컫는 착의의 조각 (마치 젖은 옷을 입은 듯한 여체의 조각)에서 벗어난 최초의 누드 조각이다. 이 기법은 그리스 조 각에서 대단히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그만큼 많은 추종을 불러 일으켰다.
크니도스 도시를 위해 제작한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매우 부드럽고 편안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조각으로서 창녀를 모델로 하여 약 2m 크기의 8등신 비례로 제작되었다. 최초의 완전한 누드 조각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 조각상은 헬레니즘뿐 아니라 그 후 세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많은 모조 작품도 제작되었다.
누드의 우아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폴리클레이토스의 <도리포로스>처럼 콘트라포스토가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S 자 형태의 조형에서 한 걸음 발전하여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섬세함을 지니고 있는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상부 가슴의 표현이나 전체적인 볼륨감을 통해서 20세 안팎의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관능적인 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목욕을 시작하기 위해 막 벗은 옷을 항아리 위에 놓는 동작을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묘사했는데, 여인의 부드러운 피부와 단단한 항아리에 올려놓은 둔탁한 옷의 표현이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오른손으로 국부를 살짝 가린 표현과 단아한 머리카락 그리고 약간 수줍음이 엿보이는 여인의 은근한 시선에서 절제된 조형 언어를 느낄 수 있다.
원작은 살아 있는 듯한 여체미가 느껴지도록 청동으로 만든 후 그 위에 채색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의 작품은 원작을 충실하게 모각한 대리석 조각이다. 프락시텔레스는 이 조각의 관능성을 보다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례를 8등신으로 했다. 이처럼 관념적인 비례를 이용한 조각은 서양 조각에서 지속해서 이어져 온 규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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