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는 미술의 주도권이 피렌체에서 로마와 베네치아로 옮겨갔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들이 회화와 조각에서 유래 없는 걸작들을 생산했고, 그들의 작품은 엄격한 구도와 완벽한 비례, 원근법 등 르네상스의 기법을 총망라하여 회화 발전의 정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1500~20)를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라 부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 인간이라는 용어는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지혜로운 인물을 가리킨다. 이런 인간의 전형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인데, 그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다.
레오나르도는 그 핸섬한 용모와 지성, 매력으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날렸다. "그의 매력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침이 없다."라고 말했던 동시대인들은 이 키가 큰 금발의 사나이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몸놀림은 우아함 그 자체이며 그의 재능은 너무나 뛰어나서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해 버린다." 금상첨화로 "레오나르도는 신과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며, 재기 발랄한 화술로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라고 쓰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또한 비행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새장에 갇힌 새를 볼 때마다 주인에게 돈을 주고 새를 풀어주곤 했다. 그는 노트에 새의 퍼덕이는 날갯짓을 스케치하면서 위로 솟구쳐 오르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비행장치를 고안하였다. 그는 노트에 "나는 기적을 창조하고 싶다."라고 쓰고 있는데 산을 움직이는 기계 장치, 낙하산, 헬리콥터, 장갑차, 종 모양의 잠수함에 이르는 그의 발명품들을 보면 그의 이런 야망을 읽을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또한 누구보다도 예술가는 천재라는 개념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예술가는 천한 일을 하는 장인에 불과했으나 레오나르도는 예술의 정신적인 면과 창조성을 끊임없이 강조하여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를 '왕이나 신'과 같은 위치까지 격상시켰다.
그러나 그의 빛나는 재능에도 한 가지 흠결이 있었다. 동시대의 화가 바사리는 레오나르도를 '변덕스러운 인물'로 칭하였는데 왜냐하면 그의 관심사가 너무 다양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채 다른 작품에 착수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문받은 제단화를 남겨놓은 채 아드리아 해로 조수의 움직임을 관찰하러 갔고 거기서 산사태를 방지하는 기계를 발명하는 식이었다. 한 사제는 "레오나르도는 과학 실험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붓을 쥐고 있을 틈이 없다."라고 꼬집었다.
레오나르도는 생전에 20개의 작품밖에는 제작하지 못했다. 그는 75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사망했는데 죽기 전까지 프랜시스 1세의 궁전에서 봉사하였으며,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왕과 담소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신과 인류의 뜻을 거슬렀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모나리자 : 마력을 지닌 매혹적인 미소
이 작품은 1804년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질 때까지 나폴레옹의 침실을 장식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7주 동안 160만의 인구가 몰려들어 교통 혼잡을 빚을 정도였으며, 도쿄에서는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각 관람자 당 10초씩만 보는 것이 허용되기도 했다. 이 작품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이다.
그녀는 피란체의 상인인 조콘다의 부인일 뿐 그다지 중요한 인물은 아니다.(접두어 '모나'는 부인, 즉 Mrs. 를 가리키는 경칭일 뿐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여러 면에서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기준을 정립한 작품이다. 모나리자의 머리 뒤에 있는 소실점으로 모든 선들이 집중되는 원근법을 사용하였으며, 회화에서 기하학적인 구성의 중요성을 정착시킨 삼각형 구도를 활용하였다. 이것은 딱딱한 측면 초상을 자연스럽고 편안한 3/4 포즈의 초상으로 전환한 계기가 된 작품이다. 모나리자의 손을 보면 레오나르도가 해부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는 한때 병원에서 살며 인체의 골격에 대해 연구했고 적어도 30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해 보았다.
또한 이 작품은 액자에 넣어 벽에 걸 목적으로 그려진 최초의 그림으로서, 유화 물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윤곽선을 강조했던, 이전 화가들의 작품과는 달리, 레오나르도는 명암 대조법을 사용하여 인물의 형체를 다듬어 나갔는데, 어두운 밑바탕에서 시작하여 반투명의 유약을 엷게 겹겹이 칠해가면서 삼차원적인 형체와 같은 착각을 주고 있다. 이것을 스푸마토 기법이라 하는데 레오나르도는 이 기법을 통해 '윤곽선이나 경계선 없이 안갯속에 떠 있는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형체도 어두운 그늘로부터 잘 드러나 있으며 동시에 그림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듯 보인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너무도 유명하다. 공식 초상화가 지니는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레오나르도는 악사와 광대를 동원해서 모델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손이 그의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비관한 레오나르도가 이 작품을 미완성인 채로 내버려 두었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걸작으로 칭송받으며 다음 세대의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11년에는 이탈리아 예술의 금자탑이 프랑스에 있는 것에 분개한 한 이탈리아인 노동자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훔쳐 고국 땀으로 반입한 사건이 있었다. 모나리자는 2년 후 이 애국자 도둑의 지저분한 방에서 발견되어 다시 루브르로 돌아갔다.
1952년까지 최소한 61개의 모나리자를 모방한 작품이 제작되었는데, 1919년 마르셀 뒤샹의 부정적이고 호색적인 초상화부터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연작, 1983년 재스퍼 존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나리자는 미술사상 가장 존중받는 예술 작품일 뿐 아니라 모방을 통해 가장 활발하게 재생산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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