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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야기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사라지는 것들 속에 남겨진 의미

by 이든혜윰 2025. 2. 13.

 

 

 

 

사라지는 예술, 영원히 기억되는 사랑

뉴욕의 갤러리, 한 작품이 있다.
바닥에 쌓인 사탕 더미.
관람객이 다가와 하나를 집어든다.
그 순간, 작품은 변하기 시작한다.
사탕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탕은 다시 채워진다.
남아 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
그 경계를 바라보며 우리는 질문을 던진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그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를 잃지만,
그렇기에 더 강렬한 의미를 남긴다.

 

 

사라지는 것을 예술로 만든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1957년 쿠바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쿠바 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고,
십 대 시절을 푸에르토리코에서 보냈다.

1980년대 뉴욕.
그는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하며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시기 그는 ACT UP(에이즈 활동가 단체)와 연대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인 로스 레이커록(Ross Laycock)이 에이즈로 사망하면서
그의 예술은 더욱 개인적인 방식으로 깊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애도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예술로 남기기 위한 기록이었다.

 

 

 

〈무제(초록 사탕) Untitled (Portrait of Ross in L.A.)〉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미술관 바닥에 79kg의 사탕이 쌓여 있다.
이 무게는 연인 로스가 생전에 유지했던 몸무게와 같다.

관람객들은 자유롭게 사탕을 가져갈 수 있다.
사탕이 줄어드는 만큼 작품도 변한다.
그러나 미술관은 언제든 사탕을 다시 채운다.

그는 상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사라지고 다시 채워지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기억이 지속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무제(벽시계) Untitled (Perfect Lovers)〉

벽에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시계.
처음에는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오차가 발생한다.
결국, 한 시계가 먼저 멈춘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지만 결국은 이별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계가 나란히 놓여 있는 한,
그들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무제(빌보드) Untitled (Billboard)〉

도시 한복판에 걸린 흑백 사진.
텅 빈 침대가 찍혀 있다.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고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는 부재와 상실을 떠올릴 것이다.
작품은 그 자체로 의미를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직접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게 만든다.

 

 

 

예술과 관객, 완성되지 않는 작품

그의 작품은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사탕은 사라지고, 시계는 멈추고, 침대는 비어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탕은 다시 채워지고, 시계는 여전히 나란히 있다.
침대의 빈 공간은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는 예술을 정적인 오브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완성된다.

 

 

 

곤잘레스 토레스와 온 카와라 

그의 작품은 종종 일본 작가 온 카와라(On Kawara)와 비교된다.
두 사람 모두 시간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했지만, 접근 방식은 달랐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온 카와라

주제 사랑, 상실, 기억 시간, 존재, 하루하루의 기록
방식 참여형 예술, 변하는 작품 날짜를 기록한 회화, 엽서 보내기
대표작 〈무제(초록 사탕)〉, 〈무제(벽시계)〉 〈Today Series〉, 〈I Am Still Alive〉

 

 

 

온 카와라는 날짜를 그린 캔버스로
시간이 지나감을 기록했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사탕과 시계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둘 다 우리의 존재가 유한함을 예술로 남겼다.

 

그의 예술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1996년, 그는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관객이 가져가고, 사라지고, 다시 채워진다.
그렇기에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누군가 사탕을 손에 쥘 때.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볼 때.
텅 빈 침대 사진 앞에서 잠시 멈출 때.

그렇게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다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