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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야기

바스키아, 길 위에서 태어난 예술

by 이든혜윰 2025. 2. 10.

 

거리에서 시작해 시대를 뒤흔든 낙서

뉴욕의 밤.

가로등 불빛이 벽돌 건물을 비춘다.
벽에는 누군가 휘갈긴 그림이 남아 있다.
해골 같은 얼굴, 뒤틀린 선, 원색이 뒤섞인 흔적.
그리고 그 사이 두드러지는 왕관의 형상.

누군가는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벽 위의 그림은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 그림을 예술이라 부른다.

장 미셸 바스키아.
그는 거리에서 태어났고,
그의 예술은 도시 속에서 자라났다.

 

 

거리에서 태어난 화가

1960년, 뉴욕 브루클린.
바스키아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는 색과 선에 반응했다.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을 다니며 렘브란트와 피카소를 보았고, 책을 넘기며 새로운 세계를 탐험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 거리에서의 생활.
학교를 떠나 뉴욕을 떠돌며, 그는 벽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SAMO – 낙서인가, 예술인가?

1970년대 후반, 뉴욕의 거리 곳곳에
의문의 문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SAMO는 가짜 예술을 위한 대안이다."
"SAMO는 소비사회에 대한 조롱이다."

벽 위에, 전봇대에, 지하철 승강장에.
도시의 틈마다 글씨가 새겨졌다.
누군가는 낙서라 했고,
누군가는 메시지라 했다.

그것은 바스키아가 남긴 흔적들이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SAMO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단어를 새겼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이 글을 남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이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는가.

그러다 바스키아는 거리에서 벽을 넘어 캔버스로 이동했다.

그는 더 이상 출처를 알 수 없는 낙서나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그림은 이제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품이 되었다.

 

 

 

바스키아의 작품, 무질서 속의 질서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말했다.

"이건 아이가 그린 것 같다."
"이게 예술이라고?"

그러나 그의 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그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의 그림 속에는 반복되는 이미지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형태들은 왕관, 해골,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과 숫자들이었다.

이런 형태들은 각자의 상징을 가진다.

시대에 따른 차별과 부당함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 잡아온 예술가로서의 자부심.

인간 본질의 의문과 죽음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거리에서 흩어지는 언어들과 메세지들을 상징한다.

각자의 심볼들이 모여 하나의 알레고리로 형태를 갖추고 그의 작품은 세대에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잊혀지는가?

그는 미술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의 선은 정리되지 않았고 그의 색은 단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질서가 있었다.

 

 

바스키아와 워홀, 두 개의 세계가 만나다

그가 뉴욕 미술계의 중심으로 들어섰을 때,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앤디 워홀.

팝아트의 거장이었고 미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문 사람이었다.

바스키아는 워홀을 만났고 두 사람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워홀은 바스키아에게 정제된 시각을 가르쳤고 바스키아는 워홀에게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감각을 선물했다.

그들은 친구이자 라이벌이며 서로의 그림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워홀이 세상을 떠나자 바스키아는 점점 불안정해졌다.

그는 붓질은 격하고 거칠어졌으며 그의 그림은 점점 더 절박한 기운을 띠었다.

그리고 그는 1988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키스해링은 바스키아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다.

그의 그림도 거리에서 태어났다.
처음 키스해링의 낙서는 뉴욕의 지하철 광고판에 흰 분필로 단순한 형상을 그렸다.

'낙서'로 시작한 그들의 작업은 많은 공통점을 보이나 그 둘의 그림은 확연히 다르다.

바스키아는 폭발적인 감정의 붓질을 남겼고 해링은 명확한 선과 반복되는 기호를 사용했다.

바스키아의 그림은 혼란스럽지만 강렬하고 해링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즉각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둘 다 예술을 거리에서 시작했다.
예술이 특정한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가는 그곳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그림은 여전히 뉴욕의 벽과 캔버스 위에 남아 있다.

여전히 그들이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건재하고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키스해링과 바스키아의 안타까운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그 둘 모두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뉴욕의 벽 위에, 미술관의 캔버스 위에,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쩌면 그의 그림은 미술관보다 거리에서 더 잘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의 선을 따라가며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때.

그렇게 바스키아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