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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야기

시대를 비추는 만화 시장, 한국 웹툰과 회귀물의 유행

by 이든혜윰 2025. 2. 6.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 꼭 들렀던 곳이 만화책방이었다. 두세 권씩 빌려와 밤에 누워 보다가 잠드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즐겨 보던 작품의 신간이 나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만화책방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온라인 문화가 발달하면서 점점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제는 종이책 대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만화를 즐길 수 있다. 덕분에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책장을 넘기며 보던 만화책의 낭만이 사라진 것은 아쉽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만화를 좋아한다. 네이버 웹툰도 매일 챙겨 보는데, 다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작품들은 한 번씩 접해본 것 같다. 특히 최근 몇 년간 한국 웹툰 시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흐름이 있다. 바로 ‘회귀물’의 압도적인 유행이다.

 

만화,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

중학생 시절, ‘만화도 이제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만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예술 장르다. 과거에는 미술관에 걸리는 작품만이 예술로 인정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이 표현되고 있다. 현대 미술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듯, 만화 역시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는 일본과 한국 만화 시장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본 애니메이션과 영화 시장에서는 시간을 초월하는 ‘타임리프’ 장르가 꾸준히 등장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설정, ‘슈타인즈 게이트’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일본 사회가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거나, 역사적 선택을 후회하는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웹툰 시장에서 회귀물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웹툰 시장의 회귀물 붐

요즘 웹툰 시장에서 회귀물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주인공이 죽거나 큰 실패를 겪은 후 과거 혹은 다른 세계로 돌아가 새로운 기회를 얻는 이야기 구조가 반복된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태어나며 얻게 된 지식과 능력을 활용해 큰 성취를 이뤄낸다.
이러한 회귀물의 인기 역시 한국 사회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높은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피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독자들이 회귀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미국 코믹스 시장의 흐름과 비교

한국과 일본의 만화 시장이 회귀물과 타임리프를 통해 시대적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면, 미국 코믹스 시장은 어떤 변화를 보여주고 있을까?

미국의 코믹스 산업은 ‘마블’과 ‘DC’가 양대산맥을 이루며 슈퍼히어로 서사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미국 코믹스 시장에서도 멀티버스(다중우주) 개념과 리부트(Reboot) 서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의 회귀물과 유사한 면이 있다.

 

멀티버스와 리부트: 마블과 DC는 기존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평행 세계를 등장시켜 기존 캐릭터의 운명을 바꾸거나, 전혀 새로운 설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여러 개의 차원이 연결되는 구조를 통해 과거 영화 속 스파이더맨을 다시 소환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는 기존 팬들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새로운 서사 속에서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리부트(Reboot) 전략: 슈퍼히어로 장르에서는 특정 캐릭터의 설정을 리셋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재해석하는 리부트가 자주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배트맨은 세대를 거쳐 다양한 리부트를 통해 새로운 배경과 해석이 추가되며, 캐릭터의 원점 회귀를 활용하여 시대적 요구에 맞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의 회귀물과도 닮아 있다. 리부트와 멀티버스를 활용한 미국 코믹스의 변화는 한국 웹툰 시장에서 회귀물이 인기를 끄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독자들은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익숙한 캐릭터가 다른 운명을 맞이하는 이야기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만화는 시대를 기록하는 예술만화는 더 이상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담아내는 하나의 예술 장르다. 일본의 타임리프물이 과거를 향한 향수와 후회를 반영했다면, 한국의 회귀물 붐은 현대인의 고단한 현실과 재도전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미국의 코믹스 시장에서는 멀티버스와 리부트를 활용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시대적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문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만화는 그 거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앞으로도 만화라는 장르가 어떻게 변화하고, 또 어떤 시대적 정서를 반영할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