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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야기

예술 작품으로 보는 성경 이야기, 램브란드 '아브라함의 제사'

by 이든혜윰 2025. 2. 5.

 

오늘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 카라바조에 이어 네덜란드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스페인과의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네덜란드는 경제적 번영을 맞이했지만, 종교적으로는 구교보다 신교, 즉 프로테스탄트가 우세한 지역이었다. 신교에서는 조각과 그림이 우상숭배로 변질될 위험을 경계했기 때문에 이전 시대처럼 예술가들에게 성화 제작을 의뢰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다행히도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네덜란드의 중산층이 미술품 수집에 적극적이었고, 심지어 시장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에 미술품을 전시하는 일이 흔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예술가들은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시작했고, 미술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며 작품의 수준 또한 높아졌다.

 

이 시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가 바로 렘브란트다. 단지 이 시기뿐만 아니라 서양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초기에는 초상화로 명성을 쌓았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회화는 화가가 완성되었다고 느껴야 완성된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신념은 기백있고 멋졌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을 초래했다. 출중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년까지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렘브란트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브라함의 제사'다. 오늘은 이 작품을 깊이 있게 살펴보려고 한다.

램브란트 초상화

 

 

아브라함과 신앙의 시험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인 아브라함. 교회나 성당에 다니지 않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그의 후손들로 인해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형성되었으며, 기독교에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른다.

그의 신앙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사건이 바로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시험'이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 그는 이 명령을 받아들이고, 이삭을 제단에 눕히지만, 마지막 순간 천사가 그를 막는다. 이 극적인 순간이 렘브란트의 '아브라함의 제사'에 담겨 있다.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은 많다. 이전에 포스팅한 카라바조 또한 같은 장면을 그렸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해석은 다르다. 그의 작품 속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에도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며, 이삭을 누르고 있는 손에는 불안과 절망이 담겨 있다.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는 이 순간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신앙과 인간 본능 사이의 갈등을 직관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램브란트 - 아브라함의 제사

 

 

신의 명령, 인간의 본능

아무리 신의 명령이라 해도 자식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아브라함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신앙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일 때 나타나 그에게 약속했다.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아브라함은 백 살이었고, 아내 사라는 구십 세였다. 그는 속으로 '이게 가능할까?'라며 실소를 터트렸다. 사라 또한 믿기 어려웠던 듯 비웃음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삭이 성장한 후 하나님은 다시금 아브라함을 시험한다. 그토록 기다려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사건을 단순히 믿음의 시험으로만 보면 지나치게 단편적인 해석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바치게 되면 그 약속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즉, 아브라함은 이 명령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단순히 명령에 대한 맹목적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보여준 약속의 신뢰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행동할 수 있었다. 결국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은 막연한 신뢰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쌓인 확신이었다.

 

카라바조 - 이삭의 희생

 

 

신앙과 현대적 해석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단순히 신앙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볼 수 없다. 오늘날에도 이 사건은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고 있다. 현대 기독교에서 비판받는 요소 중 하나가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논리적 근거 없이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맹목적이 아니라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에 가까웠다.

예수 또한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라고 했지만, 그가 예언한 사건이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이 이를 비교하고 믿으라고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지 못하고 믿는 것'과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렘브란트의 '아브라함의 제사'는 단순한 종교화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과 인간 본능의 충돌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이 그림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신앙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감정과 신앙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렘브란트는 극적인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이 고민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을 유도한다.

렘브란트의 '아브라함의 제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믿고 있으며, 우리의 믿음은 단순한 복종인가, 아니면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