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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야기

하이퍼리얼리즘, 극사실주의가 던지는 담론

by 이든혜윰 2025. 2. 4.

하이퍼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한 번쯤 들어봤을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극사실주의). 실재하는 사람의 모습을 마치 사진처럼 조각으로 만들거나,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그리는 방식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 팝아트의 영향 속에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하이퍼리얼리즘은 유럽으로 확산되며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뉴리얼리즘(New Realism)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이후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사실주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하이퍼리얼리즘 조각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듀안 핸슨(Duane Hanson)과 존 드 안드레아(John De Andrea)가 있으며, 이들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후 하이퍼리얼리즘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현대 미술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철학: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하이퍼리얼리즘을 처음 접하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사진처럼 정밀하게 재현했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사진을 찍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지 않을까?”
하지만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현대사회를 향한 철학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 장르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현대 문명과 기술 발전 속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을 비판한다.
쉽게 말해, 하이퍼리얼리즘의 핵심 주제는 ‘본질의 상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복제와 미디어에 의해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실과 가상이 혼재되며, 점점 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보자.
내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다. 어느 날 동생이 정성껏 음식을 만들었다. 맛있게 먹으려는 줄 알았지만, 음식을 예쁘게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그 음식은 내가 맛있게 먹었지만.
이처럼 우리는 먹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 요리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실보다 온라인상의 이미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을 통해 비판하는 것이다.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를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을 현실, 그림을 복제된 이미지라고 가정해 보자.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는 사진을 그대로 그려서, 사람들이 그것을 사진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하이퍼리얼리즘은 SNS를 맹목적으로 믿고 살아가는 개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더 광범위한 사회 현상을 지적하고자 한다. 즉,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과정이 목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래 목적을 잃고 형식적인 절차에 매몰된 회사나 기관, 핵심 가치보다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의미 없이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본질을 상실한 인간 등.
이처럼 하이퍼리얼리즘은 기술 발전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인간성이 희미해지는 현상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이퍼리얼리즘이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 첨단 기술이 예술과 만날 때 발생하는 철학적 고민을 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이 현상을 작품을 통해 경고한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현대인의 자아와 정체성, 그리고 미디어와 인간관계를 탐구하며 중요한 담론을 형성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순한 극사실적 표현을 뽐내는 장르가 아니다. 기술, 인간,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는 예술적 장르이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들이 과연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계속해서 의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하이퍼리얼리즘은 기술이 발달하고 복제가 쉬워지는 시대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을 상기시키는 예술이다.